멍청하군.”

“ .......?”

 

셜록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그렉은 뜨끔한 가슴을 몰래 쓸어내렸다. 아직 어제 떠난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 상념에 젖은 머리를 비우고 눈앞의 잔혹한 살인 현장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그렉에겐 오늘은 반드시 야근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평소와 똑같아 보이지만 어딘가 뻣뻣하게 굳어있는 그렉을 잠깐 바라본 셜록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범인은 약혼녀가 아니야. 그렇게 위장을 하려고 무척 애를 쓴 모양이지만 약쟁이의 녹아내린 뇌로는 한계가 있었지. 그래도 의외로 세부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해. 피해자가 최근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했고 범죄전과가 있으며 마약중독자인 남자인 찾아야해. 이제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았군?”

셜록.”

존이 그만하라는 뉘앙스를 담아 부르자 셜록은 입을 삐쭉거렸지만 더 이상 그렉을 괴롭히지 않았다. 대신 주변의 다른 경관과 멍청한앤더슨에게 돌아가며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존의 잔소리는 더욱 높아져갔다. 그렉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숨 돌렸다.

 

 

 

조금 심술을 부리긴 했지만-앤더슨은 못 견디고 도망갔다- 셜록의 자문 덕분에 유력 용의자의 거주지를 알아낼 단서까지 찾았다. 급박한 사건을 한결 편히 해결하게 될 명백한 현실이 얼떨떨하기도 했다. 셜록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준 경관들 덕분이기도 했기에 서둘러 철수시키고 뒷정리를 도맡았다. 현장이 어느 정도 정돈이 되어가자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던 셜록이 그렉에게 손을 내밀었다.

보수.”

?”

 

그렉은 오늘 내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눈앞의 남자를 당황스러움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시선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치워낸 셜록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돌려주었다.

 

할 수 있는 반응이 그런 것 밖에 없는 건가. 정말 단순한 사람이군. 이런 시시한 트릭에, 멍청한 범인까지 잡아줬잖아. , 경감의 데이트 시간도. 특별히 콜드케이스 세 개로 봐주지.”

데이트라니, 그런 거 아냐!”

 

흑심을 들킨 것 같아 얼결에 큰 소리를 쳐버린 그렉은 곧바로 후회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그 시선이 흥미를 띄어가는 것도 느껴져 무척 난처했다. 이 와중에도 마이크로프트에게 문자를 보내려 꺼내 든 휴대폰을 제대로 집어넣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렉이 무어라 변명하지도 못하고 혀가 없는 사람처럼 알 수 없는 의성어만 내뱉은 것을 보며 셜록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숨기고 싶거든 무슨 소리냐고 말했어야지, 주머니 안에서 그렇게 꽉 쥐고 있으면 손에 땀차지 않아? 경감 휴대폰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안심해.”

그런 거야? 역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더니.”

 

남의 속도 모른 채 어깨를 맞대고 십대 소녀들 마냥 수군거리는 셜록과 존을 보고 있으니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렉은 그 것도 현 상황을 개선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기며 빨리 쫓아내는 것을 선택했다.

 

허튼 소리 말고 얼른 돌아가기나 해! 자네들이야 말로 데이트를 하던가!”

그래, 알아서 둘의 시간을 보내고 더 이상 경감의 시간을 뺏지 말아주렴.”

 

바람을 타고 뒤에서 들려오는 그리운 목소리에 그렉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검은 자동차와 우산과 함께 나타난 마이크로프트가 원래부터 있었다는 것 마냥 자리하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환상을 보는 것처럼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렉에게 미소지어주며 그의 팔에 손을 얹어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그러면서 셜록에게 나중에 연락하라는 언질도 빠트리지 않고 남겼다. 순식간에 두 사람을 태운 검은 자동차가 작은 소리 하나 없이 사라져 갔고 그 자리엔 한 사람의 빈자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렉은 눈 한번 깜박였을 뿐인데 별 세계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차에 태워졌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다른 곳에 도착했다. 어느 정도 주위를 둘러볼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는 개인실에 마이크로프트와 단 둘이 마주앉아 있었다. 딱 봐도 고풍스러운 장식들이 눈에 띄었지만 화려한 곳은 아니었다. 부담스럽지 않고, 조용하며 포근하기도 한 분위기에 젖어들자 어느새 긴장이 풀리며 마이크로프트를 똑바로 바라 볼 수 있었다. 멀리 야경을 바라보고 있던 마이크로프트도 시선을 맞춰오며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진정이 좀 되었나 보군요.”

아직 조금 멍하긴 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매번 존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겠군요. 불쌍한 존.”

 

반쯤 농담이었는데 마이크로프트가 말이 뼈가 있는 것 같다면서 그래서 불만이냐고 되려 물어오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말장난을 주고받다보니 접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인해 잠시 대화의 흐림이 끊기자, 때를 놓치지 않고 가장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셜록도 안하던 짓을 하고..”

유감스럽게도 해가 서쪽에서 뜨거나 한건 아닙니다. 제가 셜록에게 부탁을 했죠.”

경께서요?”

 

홈즈 형제의 사이가 그리 온화하진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꽤 놀란 듯한 그렉의 얼굴을 보며 마이크로프트는 루비빛 로즈 와인이 담긴 잔을 가볍게 돌렸다.

 

오늘이 아니면 당분간 시간이 날 것 같지 않더군요.”

그렇습니까..”

 

당분간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이 주어지자 다시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늘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더 막막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복잡한 심정을 구기는 중에 가까이에서 맑은 소리가 울렸다. 시선을 옮기니 마이크로프트가 건배를 청하고 있었다. 허둥지둥하며 잔을 들어 올리자 마이크로프트의 잔이 부드럽게 마주치며 투명한 소리를 남기고 멀어졌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보다, 현재를 충실히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경감.”

“ - 옳은 말씀입니다.”

 

현재에 충실히. 그 말에 긍정하며 다른 생각 따윈 안중에서 밀어냈다. 지금 마이크로프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돌아오는 미소에 감사하며 다음 접시를 맞이했다.

 

 

와인을 마셨으니 혼자 운전해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당분간 볼 수 없다니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다. 이런 시커먼 욕망이 부디 티가 나지 않길 바라며 데려다 주겠다는 권유를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 올랐다. 마이크로프트와 나란히 앉아 어느 때보다 가까이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척 두근거렸다. 그렇게 느리게 흘러간다고 느낀 행복한 시간이 기사가 도착을 알리며 쉼표를 찍었다.

 

“ ..도착했군요.”

“...그럼 이만, 좋은 밤 되시길.”

 

그렉은 마이크로프트에게 조심해서 들어가라는 말을 마저 남기고 한손으로 차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다른 손에 따뜻한, 타인의 체온이 얹어졌다.

 

그렉

?”

 

손에 느껴지는 분명한 체온, 게다가 한 번도 마이크로프트에게 불린 적 없는 이름까지 들리자 그렉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장미향이 퍼졌다.

 

한쪽 뺨에 보드라운 것이 살짝 문질러지는 생경한 감각에 그렉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렉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울 듯 말 듯 한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이었다.

 

“ -편안한 밤 보내길.”

 

 

 어떻게 플랫에 들어오긴 한 그렉은 소파에 미끄러지듯이 앉았다. 방금 자신이 겪은 것이 사실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손과 뺨에 남은 촉감과 체온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게다가 장미향도 분명히 남아 있었다. 뺨에 닿는 순간 퍼지던 그 장미향이 생생히 느껴졌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늘어져있던 그렉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젠장-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단서를 추적하여 알아낸 진범의 은신처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진범의 잔혹성과 인질의 존재를 고려하여 S. W. A. T과 함께 움직였다. 출입문에 도달하자 벽에 붙어 상태를 살폈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신호를 보냈다. 3. 2. 1. 숨을 삼키며 문을 걷어차고 돌입했다 유리가 깨지고 물건이 부서지며 총격이 오갔다. 그 모든 것이 가라앉고 S. W. A. T이 거칠게 저항하는 진범을 구속했다. 그렉은 아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있는 인질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키자 인질의, 가느다란 여자의 손이 그렉을 향해 뻗어졌다.

 

작은 기계음이 울림과 동시에 영상이 멈췄고 이내 깨끗이 사라졌다.

마이크로프트는 모둔 것이 사라지고 까만 화면만이 남은 화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파스스 떨리는 눈꺼풀이 천천히 덮이고 다시 거둬졌다. 그 움직임에 맞춰 흉곽도 미미하게 상하운동을 했다. 숨마저 죽이고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단지 존재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존재하던 마이크로프트가 숨을 내쉬며 영상이 시작될 때부터 함께 보며 기다리고 있는 셜록에게 시선을 옮겼다.

 

가만히 있다니, 존이 정말 널 사람으로 만들고 있구나.”

 

본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셜록을 칭찬하며 테이블 위의 찻잔을 가볍게 기울였다. 차게 식은 블랙 티가 입 안 가득 씁쓸함을 채웠다. 그러나 바다에 소금포대를 녹인다고 해서 바닷물이 더 짜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한잔의 씁쓸함은 어떠한 감흥도 주지 않았다.

 

약속했던 거란다. 그리고 누누이 말하지만 MI6의 서버를 해킹하는 것은 그만두렴.”

 

셜록에게 제법 두꺼운 서류봉투를 건넸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받아들자 마자 플랫으로 달려가 한 달 정도는 틀어박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그걸 받은 셜록은 손이 닿는 협탁에 내려놓고 무릎위에 올려둔 손가락을 가볍게 두들겼다.

 

나도 무척 놀라고 있는 중이야. 그 마이크로프트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다니, 사소한 일에 대가를 너무 많이 받았어. 빚지는 건 딱 질색인데.”

형제 사이에 빚이란 게 어디 있겠니 동생아. 그래도 정 네가 불편하다면 올해 크리스마스는 본가에서 지내는 걸로 봐주마.”

애써 점잔떨 필요 없어 마이크로프트. 저런 일에 MI6S. W. A. T을 내줄 정도면 정신 못 차리고 빠진 것 같은데. 어울리지도 않는 장미향은 치워버리고 차라리 납치라도 해보는 게 어때?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데 돕지.”

이런, 난 야만인이 아니란다. 셜록.”

 

어련하시겠어셜록은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물건을 챙겨 쏜살같이 사라졌다. 마이크로프트는 혀를 찼다. 조금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했다. 그래도 흥밋거리를 가득 안겨주었으니 혹여 라도 장난에 허비할 시간은 없다는 것에 위안을 두었다.

홀로 남아 티타임을 마무리하던 마이크로프트가 포켓에 담아두었던 회중시계를 꺼냈다. 흘러가는 시간을 확인하고 그것을 손으로 굴리며 셜록이 남긴 말을 되새겼다.

 

“ ‘어울리지 않는’- 이라.. ”

 

무겁게 날아오른 그것은 종착지를 찾지 못하고 이내 산산이 흩어졌다.

 

 

᛭᛭᛭

 

 

눈앞에 불쑥 나타난 한 송이의 분홍 장미.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밀어진 손을 계속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에 멋쩍게 받아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물건이군요. .”

그렇죠? , 미리 말하는데 셜록과의 내기 같은 건 아니니까, 편하게 받으셔도 됩니다.”

 

사건을 해결하는데 급히 필요해진 자료가 있다고 하여 잠시 틈을 보아 나온 참이었다. 그러나 도착해보니 정작 요구한 사람은 오간데 없고 성실한 의사선생만이 마이크로프트를 반길 뿐이었다. 형으로써 면목 없다며 심심한 위로를 건네고 가는 길에 플랫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존도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올라탄 존이 갑작스럽게 준 장미는 별 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아스텔지에 곱게 싸여 단아함을 뽐냈다. 단순하면서도 정성이 가득 담긴 장미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 향기로운 장미를 안겨주며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 두어 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계속, 거듭되는 만남 속에서 멈추지 않는 그 장미를 언제부터인가 기다리게 되었다. 일에 치여 또 기계에서 찍어낸 인스턴트 밀가루 따위로 배를 채우고 있진 않는지, 걱정 하나를 떠올리기 시작하자 그것이 가지를 뻗어 곧 머리를 꽉 채웠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애매한 마이크로프트의 표정을 살피던 존이 하지 않은 말을 마저 이었다.

 

그거, 그렉의 선물입니다.”

“... 경감의?”

셜록이 급하다는데도 기다리라며 코트를 잡고 붙들었죠. 저번엔 경황이 없어 주지 못했다며 미안하다고 꼭 전해달라더군요.”

 

정말, 너무나도 올곧은 사람. 그 본질을 잃지 않고 지금의 사회적 위치에 올랐다는 것에 놀라게 만드는 사람. 마이크로프트에게 있어 그렉은 여러 의미에서 기적 같은 사람이었다. 눈앞의 장미가 그렉이기라도 한 듯 바라보는 시선에서 애틋한 마음이 넘쳐흘렀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르게 변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분위기를 가만히 지켜보던 존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렉을 계속 만난다는 건, 싫지 않다는 거죠?”

하릴없어 보여도, 난 꽤 바쁜 사람입니다 존. 얼마 되지 않은 개인적인 시간은 아무에게나 기꺼이 쓰지 않죠.”

 

에둘러 말하여 논점을 흐린 두루뭉술한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듬뿍 담긴 애정까지 흐릴 수는 없었다. 요조숙녀마냥 새침하게 더 이상 말하지 않는 마이크로프트를 보며 존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답답하네요. 그렇게 좋아하면 어째서 계속 거절하는 거죠? 사귀면 되잖습니까.”

 

야드 안에 퍼져있는 소문을 잘 알고 있는 존은 지금의 상황이 꽤 답답하게 느껴진 듯 했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는 부드럽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경감의 감정은 동경일 뿐입니다. 비유하자면, 난 경감에게 있어 절벽 위의 꽃이죠.”

뭐라고요?”

 

의외의 답변에 존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이내 화가 났다.

존은 그렉이 며칠 전 술집에서 고주망태가 될 때 까지 술을 마신 것도, 일하다 말고 가끔 넋을 놓고 실실대는 것을 듣고, 직접 보기까지 했다. 그 원인은 분명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었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에 대한 감정이 가볍다고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명색이 런던 경감이 자기감정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일 리가 없잖아요!”

이것도 사실입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확신합니까?”

그건……

증거를 보여줘-라는 그 안에 깔린 요구를 눈치 챈 마이크로프트는 입을 다물었다. 차 안에 묘한 긴장과 침묵이 감돌았다. 결국 이내 한숨을 쉬며 모두에게 숨겼던 비밀을 들려주었다.

 

난 경감을 거절 한 적 없습니다. -거절할 만한 고백을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

“?!”

 

마주앉아있던 안시아의 분신과도 같은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거친 소리를 냈다. 그것과 동시에 소리 없는 충격과 경악이 차 안을 가득 채우며 검은 세단을 들썩였다. 

 

1부완결이란

신고

8.18 무대부산 참가작입니다.

 

 

 

BBC 셜록 레마(LestradexMycroft)

 

백만송이 장미 

 

 

Start. 당신이고 싶습니다

 

 한 곳을 가득 채운 촛불, 천장위에 가득한 풍선, 황홀한 저녁만찬,

시선을 고정시키는 눈부신 보석, 탐스럽게 빛나는 꽃다발. 정렬적인 붉은 꽃송이.

. 장미.

사랑을 표현하는 대표인 상징. 그런 장미가 두 팔 한가득 안아도 넘칠 정도로 큰 꽃다발은 로맨스의 절정이라고 예전부터 모든 사람이 입 모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실과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도 갓 농원에서 공수해왔다는 장미를, 물기를 머금고 탐스럽게 빛나는 꽃다발을 조심스레 내민다. 이 사람의 시선이 꽃다발에 머무는 찰나의 순간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퍼시픽 블루군요. “

홈즈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듭니까?”

처음이 아닌데도 긴장을 지울 수가 없어 한마디 할 때마다 혀를 깨물 것 같았다. 마이크로프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손에 들린 꽃다발에만 오롯이 관심을 쏟으며 물기 머금은 통통한 꽃송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렉을 마주봐 왔다. 단정한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옅은 홍조와 미소를 띤 얼굴이 위 아래로 작게 흔들리자 그렉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여태까지 봐왔던 반응 중에 가장 좋은 반응이었다. 이번엔 성공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없이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심호흡을 하며 서둘러 진정시켰다. 마른침을 삼키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엔 꽃보다 홈즈경이 더 아름답습니다. ...좋아합니다.”

마지막 음절이 끝나자 마이크로프트의 입 꼬리가 살짝 내려앉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그렉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다 마이크로프트는 작게 숨을 들이쉬며 은은한 장미향을 폐 안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부드러운 어조로 답했다.

 

과한 칭찬이군요. 고마워요 경감.(Thank you very much)”

" ..............아닙니다."

 

그렉의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배로 커졌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단 한 문장이었다.

 

오늘도 역시...’

 

정갈한 퀸즈 잉글리시로 돌아온 네 마디의 답변.

 

그것은 곧 귀족의 정중한 거절.

 

오늘로써 99번째 받은, 자신의 고백에 대한 답변이었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에 맥주만큼 좋은 것은 없다.

술자리를 만드는 흔한 변명에 오늘만큼은 따르고 싶었다. 그렉은 맥주를 숨조차 아깝다는 듯, 한 번에 마시고 병을 굴렸다. 그 병은 세차게 굴러가 이미 카운터 위에 쌓여있던 다른 경찰들의 술병 핀을 정통으로 맞추고 거한 소리를 내며 유리조각이 됐다.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멋지다며 환호하고 그렉의 어깨를 연신 두들겼지만 그 소란 속에서 그렉은 아무 말 없이 새로운 술병만 집어 들었다. 그 술마저 가쁘게 들이키자 도노반이 더 이상 참지 않고 술병을 뺏어 들었다.

 

경감님. 너무 많이 마시셨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렉은 아무 말 없이 옆 자리에 앉은 다른 경찰의 술잔을 빼앗아 들었다. 걱정해주는 도노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기운이 없었고 우울했다. 지금 남아있는 힘을 다해 술병을 움켜쥐고 연거푸 들이키는 그렉의 상태를 알기나 한지, 속 편한 한 동료가 멋지다며 말을 걸다 마침 생각났다는 듯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와는 어떻게 되가? 화려한 꽃다발의 주인! 설마, 어제 또 차였어?”

 

’, ‘Again'

그 한 단어가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낄낄거리는 친구는 농담 삼아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그렉은 숨이 턱턱 막혀왔다. 더 이상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을 기운도 없어 만취한 사람마냥 카운터에 푹 고꾸라졌다. 어깨를 흔들며 괜찮은 거냐고 묻는 도노반의 목소리와 작은 환호와 탄식 속에 울리는 돈 오가는 소리가 복잡하게 뒤엉켜 들려왔다. 친구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냐고, 저번처럼 위트 있게 꼬집으며 제 몫을 챙길 마음도 들지 않았다.

 

소란스러움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으니 그 모습이 앞에 생생했다.

단정한 얼굴. 옅은 홍조가 띄어 여느 때보다 생기 있어 보이는 뺨. 수줍은 미소. 부드러운 어조. 그리고

 

-Thank you very much

 

젠장-’

 

그렉은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을 떠올리자 이성의 제어를 벗어나 미친 망아지마냥 다시 날뛰는 심장을 한심하다며 속으로 다시 짓씹었다. 거절당하는 그 순간, 오늘도 역시- 라는 생각이 가득 했지만 그리고 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이 예쁘다라고 느꼈다. 이 마음을 깨닫고 고백을 위해 만남을 시작한 반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만남을 거듭할수록,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마이크로프트는 더욱 예뻐 보였다. 내 눈에만 이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확인받고 싶을 정도였다. 자신은 진정으로 바보인 것이었다. 사랑에 빠진 한심한 바보.

 

근데 왜 그런 여자한테 목을 매? 이정도면 할 만큼 한 거 아냐?”

그래. 실력 대단하신 런던 경감님을 이렇게나 거절하다니, 얼마나 도도한 건지.. ”

 

어느새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런던 짱짱맨 레스트레이드를 물 먹이는 여자로 넘어가있었다. 당사자인 정작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데 남녀가리지 않고 술에 취해 한없이 가벼워진 입으로 추측성 말들을 나불댔다. 그렉은 한순간에 머리가 차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에 세 번, 많게는 네 번 꼬박꼬박 꽃집에 들러 싱싱한 꽃다발을 사가는 그렉의 행동은 이미 경찰서 안에 소문이 파다하게 난 상태였다. 어떤 여자 인지 궁금하다는 둥, 떳떳하지 못한 숨겨둔 정부라는 둥 다양한 소문이 무성했지만 그렉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자라는 것부터 하나도 맞지 않는 그것들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게 마이크로프트의 존재와 명예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안일한 행동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렉은 자책하며 솟구치는 화를 꾹, 눌러 담았다. 그러나 완전히 갈무리 될 수는 없었는지 바로 옆에서 끊임없이 낄낄대던 친구가 갑자기 왜 그러냐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들려있는 남은 술을 마저 마시고 카운터에 내려놓으며 벌떡 일어났다.

바닥에 금이 가버린 술병, 살짝 얼어버린 친구 녀석, 조금 움푹 패여 버린 카운터, 싸해진 분위기.

그 모든 걸 뒤로한 채 그렉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여름 밤의 공원은 무척 시원했다.

차도 놓고, 택시도 잡지 않은 채 밤하늘에 떠 있는 몇 몇 별을 이정표 삼아 걸어가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도노반에게 뒤를 맡기고 나왔지만 입 안이 썼다. 혹시나 안 좋은 소문에 장작을 더 지핀 것은 아닌지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알코올에 절은 뇌가 활동을 멈춰야 했는데 더 날뛰는 것 같았다.

플랫을 향해 힘없이 움직이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왜 그런 여자한테 목을 매?

 

누군가 내뱉은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분명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계속 만나고, 또 고백하는 것은 정상적인 범주에 든다고는 할 수 없을 터였다. 상대방이 마이크로프트 같은 사려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진작 스토커로 고소되고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이제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거절당하면서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는, 그건.

 

- You get mail~

 

으악!”

 

생각에 잠겨있다 별안간 울린 문자 알림 음에 제대로 놀란 그렉은 주변을 몇 번 두리번거리다 문자를 확인했다. 대부분 잠들어 있을 야심한 시각에 날아온 문자의 발신인은 마이크로프트였다.

 

 

[ 내일 한가하면 저녁 같이 해요 -M- ]

 

 

그렉은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면서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꽤 긴 시간이 흘러 플랫의 형체가 보일쯤에야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거절당하면서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전에도 마이크로프트와 시간을 보낸 적이 종종 있었지만 고백하기 시작한 이후로 좀 더 잦아졌다. 거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젠 아무 상관도 없어졌다. 그저 지금 이 관계마저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게 희망고문이라고 해도, 좋다.

 

그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나 같은 일개 경찰 따위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데도 그대로 놔두는 것, 거절이라고 해도 상냥함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이렇게 계속 만나 주는 것.

 

이 모든 행동이 조금이라도 나와 같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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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손끝이 스친다.

 

친밀하게 붙은것도, 그렇다고 어색하게 떨어진것도 아닌.  여전히 진행중인 우리 관계를 보여주는 듯한 거리로 인해 간헐적으로 스치는 손끝만으로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냥 확 잡아버릴까

 

핀치의 걸음걸이에 맞춰 천천히 걷는 리스의 머리속엔 그 생각만이 가득차 있었다.  안그래도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인해 걷는게 위태로운 사람인데 베어까지 데리고 걸으니 더욱 불안해 보였다.

 

계속 걱정되게 바라보던 찰라, 핀치의 걸음이 멈춰섰다. 

 

이때다 싶어 목줄을 넘겨달라고 말하려,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귀 뒤를 타고 흘러내려가는 땀방울,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베어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낑낑 거리며 핀치의 다리에 얼굴을 부빈다. 

 

" 해롤드-?"

 

" 미안...합니다 존. 더 이상..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 가려는 핀치를 잡아 리스는 품 안에 가둬버렸다.

핀치가 깜짝 놀라 버둥거렸지만 리스는 단호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핀치를 안고선 차분히 토닥거렸다.

 

"괜찮아요. 지금은 내가 옆에 있어요."

 

"......이렇게 까지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리스씨. 그러니- "

 

"제발. 해롤드"

 

중저음의 따뜻한 목소리가 천천히 파문을 그려나간다.

호소력있는 남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두 사람의 공간에만 가득히 울려퍼졌다.

 

" 숨겨야만 하는 부분이 아니에요."

 

"........"

 

" 나를 조금 더- 의지해 줘요."

 

다정한 목소리에 이끌린듯, 핀치의 손도 어느새 리스의 등을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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